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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연체 후기, 삼성카드 하루 연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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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연체 후기 제2 화 부제: 삼성카드 하루 연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의※ 본 후기는 필자가 실제 겪은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어문저작물(語文著作物)입니다. 따라서 게시물 본문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콘텐츠 도용을 엄격히 금지하며, 저작권 침해 사례 적발 시 형사입건 및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주의하세요. 나는 개인사업자다.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혼자 일하기 때문에 보통 자영업자라 부르는데, 하는 일은 실상 프리랜서다. 온라인으로 용역을 발생시켜 처리하는 일종의 서비스 직종이다. 프리랜서의 수입은 직장인의 월급과 달리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일감이 많을 땐 많이 벌어도, 일감이 적을 땐 돈을 거의 벌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서 때로는 직장생활도 겸해봤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해봤는데, 한번은 경기도 변두리에서 흔히 깔세라 부르는 전대차 매장을 임대해서 휴대폰 판매점도 운영해봤다. 이때가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이자 이 후기의 배경이 되는 시절이다. 2013년 가을. 두 개의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경기도 변두리 매장 근처로 이사까지 감행하며 돈을 벌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기존 사업은 월 400~500만 원 정도의 순수익을 남겼고, 휴대폰 판매점으로는 직원 두 명의 월급과 깔세 임대료, 공과금 등 운영비를 제하고 한 달에 약 600만 원 정도를 남겼다. 앞으로는 남아보여도 뒤로 많이 빠지는 게 사업이라고, 자금이 회전되고 있을 땐 순수익이 아닌 매출만 믿고선 씀씀이가 자꾸만 커졌다. 술이 당길 땐 항상 양주를 마셨고, 담배는 제일 비싼 보헴 시가 마스터를 태웠다. 공부하는 가난한 동생들 밥값은 늘 내가 내줬다.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고 차를 바꿨고, 가전, 가구를 바꾸는 등 온갖 편리를 누리려고 했다. 나는 꾸준히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차라리 그때의 사치를 줄여서 더 많은 돈을 저축...

카드 연체 후기, 진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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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연체 후기 제1 화 부제: 생애 첫 대출과 신용카드 남용의 서막 ※주의※ 본 후기는 필자가 실제 겪은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어문저작물(語文著作物)입니다. 따라서 게시물 본문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콘텐츠 도용을 엄격히 금지하며, 저작권 침해 사례 적발 시 형사입건 및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주의하세요. 2010년 여름, 나는 고등고시 낙방 후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던 중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서로를 결혼상대로 여겼으나,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가난했던 두 연인은 결혼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동거를 결심했다. 당시 나는 서울에 원룸 월세라도 얻으려고 500만 원 ~ 1,000만 원 정도의 보증금 대출을 받기 위해 주거래 은행이었던 국민은행부터 시작해서 농협, 신한, 새마을금고에서 대출 상담을 받았지만, 무직자라서 모두 신용대출이 거부되었다. 그 사실을 안 여자친구는 그럼 돈에 맞춰 살자며 생전 처음 경기도 안산이라는 낯선 땅으로 내려가 무보증에 월 30만 원짜리 원룸을 덜컥 계약했다. 자기가 안산 공단에 아무 공장이라도 취직해서 나를 먹여 살릴 셈이었나보다. 내가 안산으로 내려가서 정확히 계약서를 확인해보니 티비, 에어컨 시설 및 기타 구조물에 대한 보증금 50만 원에 관리비 2만 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보증금 50만 원에 월 32만 원짜리 원룸이었다. 나는 당시 수중에 있던 40만 원 중에서 32만 원을 여자친구에게 보내어 첫 달 월세를 치르게 했고, 우리는 각자 캐리어 하나씩 들고 초라한 원룸에 입주했다. 집을 나오면 모든 게 돈이었다. 당장 인터넷 설치도 시급했고, 무엇보다 매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대출은 안 나오고, 직업도 없는데, 동거는 이미 시작했으니 정말 초조하기만 했다. 우리는 그 당시 각자의 노트북을 들고선 롯데리아 안산한양대점에 갔다. 내 휴대폰 소액결제로 기프티콘을 구입 후 햄버거세트를 사먹으면서 매장 내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